건너뛰기영역

조선왕릉

사릉 학술이야기

정순왕후와 영도교 이야기들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영 이별한 다리

복개된 청계천에는 영도교라는 다리가 있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영도교의 이름에는 정순왕후와 단종의 일화가 얽혀 있다.
1458년(세조 4)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귀양갈 때 그의 비 정순왕후가 이 다리까지 따라왔으나,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고 다리 위에서 이별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이 다리에서 이별한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하여 영영 이별한 곳, ‘영 이별 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영이별교, 영영 건넌 다리 등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 말이 후세에 와서 ‘영원히 건너가신 다리’라는 의미로 영도교라 불리게 된 것이다. 훗날 영미교(永尾橋)라고도 불렸는데, 이 역시 영이별교의 음이 전해 내려오면서 변해 붙여진 이름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순왕후와 멀리 떨어진 영월에서 마지막을 맞은 단종의 장릉 전경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영 이별한 다리

영도교는 처음에는 왕심평대교(旺尋坪大橋)라고 하여, 서울 흥인지문을 거쳐 왕십리, 뚝섬, 광나루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였기 때문에 통행량이 많았다. 성종 때 영도사(永導寺 : 지금의 안암동 개운사)의 승역을 동원해 돌다리를 놓은 뒤, 성종이 직접 영도교라는 어필을 내렸는데, 영도교는 이때 붙은 이름이다. 이후 조선시대 말까지 영도교는 서울 외곽의 주요 다리 역할을 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다리를 부수어 궁궐의 석재로 써서 없어졌다.

새롭게 들어선 청계천 영도교

대신 같은 자리에 나무다리를 놓았지만, 큰물이 질 때마다 떠내려가 옆의 청계천 바닥에 돌을 놓고 내를 건넜다고 한다. 뒤에 콘크리트로 신식 다리가 놓이기도 했지만, 1950년대 말부터 추진된 청계천 복개공사로 없어졌다. 지금은 영도교의 이름과 위치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다리의 구조나 형태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현재 있는 영도교는 2005년 말에 끝난 청계천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새롭게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