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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김포장릉 학술이야기

추존왕 이야기

추존왕의 능

장릉은 추존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능이다. 추존왕(追尊王)이란 실제로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떠난 뒤에 왕으로 높여 묘호가 내려진 왕을 말한다. 어떠한 인물들을 왕으로 추존하는 것일까? 조선의 추존왕은 모두 9명이다. 이들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세자의 신분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왕의 아버지, 그리고 태조 이성계의 4대 선조이다. 왕으로 추존된 이들은 종묘에 신위를 모셔서 왕위에 오른 왕과 똑같은 대우를 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세자나 대군묘의 예로 조영된 능을 왕릉의 상설에 맞게 규모를 키우거나 석물을 추가하여 능도 더욱 위엄을 갖추게 되었다. 태조 이성계의 4대 선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를 제외한 조선의 추존왕은 다음과 같다.

추존 원종과 인헌왕후가 잠들어 있는 장릉의 원경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인조의 아버지 원종(元宗)

추존왕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 1587년 정원군에 봉해졌으며,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 아들인 능양군이 반정 세력의 추대를 받아 조선 16대 왕 인조로 즉위하자 정원대원군으로 추존되었으며, 9년 후 원종으로 추존되었다. 인조는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고 선왕인 광해군이 폐위된 터라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왕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삼촌의 왕위를 계승한 성종의 아버지 덕종(德宗)

덕종은 세조의 맏아들로 의경세자에 봉해졌다. 그러나 세자로 책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20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동생인 예종이 세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나 예종 역시 1년 남짓한 재위 기간을 채운 뒤 세상을 떠났다. 의경세자에게는 월산대군과 자산군 두 아들이 있었는데,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는 둘째 아들인 자산군으로 하여금 예종의 뒤를 잇게 하였고, 그가 9대 왕인 성종이다. 성종이 왕위에 오른 뒤 의경세자는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동생의 아들로 인해 추존된 진종(眞宗)

진종은 영조의 맏아들로 1719년 태어나 1724년 경의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10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효장세자라는 시호를 받았다. 후에 그의 이복동생인 사도세자(장조)가 왕세자가 되었으나 그마저 즉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사도세자의 아들이 22대 임금 정조로 즉위하였다. 정조는 영조의 유언에 따라 효장세자의 양아들로 입적되고,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존하였다. 이후 대한제국 선포 후 순종황제가 등극 한 후 1908년(융희 2)에 진종소황제로 추존되었다.

비극적 죽음을 맞았던 정조의 친아버지 장조(莊祖)

장조는 형인 효장세자가 죽자 1736년 세자로 책봉된 후 대리청정을 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였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1762년 28세의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1776년 아들인 정조가 즉위한 후 그를 장헌세자로 추존하였으며,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 고종의 계승상 고조부의 자격으로 장조의황제로 추존되었다.

조선후기 예와 악을 발전시킨 헌종의 아버지 문조(文祖)

문조는 순조의 아들로, 태어난 지 3년만인 1812년(순조 12)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1827년(순조 27)에는 순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였다. 대리청정 기간동안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예악진흥을 위해 정재(呈才)를 직접 만들었다. 그러나 순조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 1830년에 효명세자의 시호를 받았다. 이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고,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 고종의 계승상 아버지의 자격으로 문조익황제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