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영역

조선왕릉

의릉 학술이야기

의릉의 수난 이야기

18세기에 조성된 의릉

1724년(경종 4)에 경종이 37세로 세상을 떠나자 의릉을 조성하였고, 그로부터 6년 뒤 선의왕후가 세상을 떠나 경종의 능 앞쪽에 능을 조성하였다. 이렇게 왕과 왕비의 능을 하나의 능역에 앞뒤로 놓아 조영한 동원상하릉 형식은 조선 왕릉에서는 매우 드물다. 당시의 양주 중량포 천장산 기슭에 조영되었으며, 현 주소는 서울시 성북구 화랑로 32길 146-20 이다.

접근 금지 구역으로 설정된 의릉

의릉은 다른 왕릉들처럼 긴 세월을 별 탈 없이 견뎌왔고, 조성한지 250년이 지난 1970년 5월 26일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204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화재로 지정된 이곳을 함부로 답사할 수 없었다. 1962년 중앙정보부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일반인들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궁궐의 후원처럼 변모해 버린 의릉

일반인들의 접근만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왕릉의 원형이 심하게 훼손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었던 중앙정보부는 왕릉의 우측 능선을 깎아서 넓은 축구장을 조성하고 콘크리트 청사 건물을 세우는가 하면, 좌측 능선 역시 청사를 짓기 위해 산허리를 잘라냈다. 1972년경에는 정자각과 홍살문 사이 사초지의 땅을 파서 인공으로 연못을 만들고 관상어를 기르며, 외래수종 식재와 전통에 어울리지 않는 조경시설물들을 설치하였다. 2003년 발굴조사 당시 남아 있던 고 건축물로는 정자각과 비각, 홍살문뿐이었으며, 수복방, 수라간, 재실은 멸실되어 남아 있지 않았다.

정자각과 홍살문 사이의 사초지에 조성한 인공연못. 현재는 사초지로 복원되어 남아있지 않음

다시 개방되는 의릉

의릉은 능의 주인인 경종이 당쟁 속에 순탄치 못한 짧은 삶을 살다간 것과 같이 많은 고난을 겪었다. 그러나 국민들과 격리된 채 원형을 잃고 궁궐의 후원처럼 변모해 버렸던 의릉은 약 30년 만에 접근 금지 구역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국가정보원(구 중앙정보부)이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에 새로운 청사를 짓고 1995년 9월에 이전을 했기 때문이다.

문화원형의 계승을 위한 노력

1996년 5월 1일부터는 일반 국민들도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의릉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친 토지 반환으로 현재는 의릉 대부분의 능역을 되찾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의릉이 국민에게 돌아온 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문화재청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는 조선왕릉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자 다양한 복원 방법을 동원하며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후손들에게 온전하게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