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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의 경관

조선왕릉의 경관

공간의 위계질서를 고려한 경관 처리

조선왕릉의 주변경관은 산세로 겹겹이 둘러싸여 능역의 중층성(重層性)을 가지고 있으며 강한 폐쇄성과 안정성을 확보한 위요 공간 속에 외부와 분리된 경관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능역의 경우에는 계층적 성격을 분명하게 인식시키게 하기 위해 독특한 공간 처리가 되어 있다.

봉분이 있는 능침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 사이에는 많은 지면 차이가 있는데, 이는 능침공간과 제향공간을 위계를 보이기 위함이다. 특히 조선왕릉에서는 능역의 가장 상위 공간인 능침공간의 폐쇄감을 높이기 위한 공간처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능침공간의 성역성과 신비감, 그리고 권위성, 엄숙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제향공간에 있는 여러 구성요소들을 활용하여 시선의 차폐를 유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직선축의 능원인 경우에는 정자각으로 차폐효과를 나타낸다. 이렇게 하면 참배객은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가는 동안에도 정자각의 높이와 볼륨 때문에 능의 봉분이 시계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공간의 위계질서를 고려한 경관 처리된 모습.주산과 봉분, 정자각, 참배객, 조산에 대한 배치 이미지

그러나 왕릉의 주인인 능주의 입장에서 보면 왕릉이 폐쇄된 공간만은 아니다. 죽은 자가 안치되어 있는 봉분에서 보면 왕릉은 분명 참배자의 활동 너머로 더 넓고 높게 트인 공간이며, 시각적으로 개방된 공간을 형성한다. 참배자에게는 폐쇄된 이미지로 엄격하게 공간의 위계가 구분되지만 능의 주인에게는 열린 이미지로 조성되어 있는 것이 조선왕릉의 경관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조선왕릉에는 인위적으로 지당(池塘)을 조성한 경우가 있는데,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능원 진입공간의 좌우 맞닿은 곳이 넓어 허한 경우 비보 차원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형태는 조선의 전통연못 형태인 방지원도(方池圓島)가 대부분이며 풍수적 경관적 특성에 따라 원지 또는 원지원도(圓池圓島)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기능적으로는 능역의 중층성을 위한 경관적 위요성과 능역 경작용 저수와 능역 내 수계관리를 위한 실용성을 들 수 있다. 때로는 능 참배 시 휴식기능과 경관의 투영 등 경관적 가치와 심신수양의 장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훌륭한 식재 보존·관리

왕릉의 능역은 능침공간 등의 핵심공간과 마찬가지로 모두 죽은 자를 배려하여 관리되었다. 능역의 대부분은 자연산림공간으로 능침공간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싸 완충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왕릉의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식재에 관련한 부분이다. 특히 소나무와 전나무 그리고 잣나무 등을 능역에 많이 심었다. 능침공간과 제향공간에는 잔디를 깔아 사초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선을 따라 진달래 등의 화훼류를 식재하고 연지(蓮池) 주변에는 버드나무를 식재하였다. 특히 능의 좌우 및 후면에는 소나무를 심고 전면의 낮은 지대에는 오리나무를 식재하도록 하는 것은 능침공간의 전형적인 식재방식이었다. 특히 오리나무의 경우에는 습지에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수종으로 지대가 낮은 왕릉의 전면에 식재함으로써 물로 인한 피해를 막고자 하였다.

왕릉의 후면과 좌우면에는 상록림을 조성하고 전면에는 방수림(防水林)을 식재한 사진

왕릉 안에 있는 지당(池塘) 주변으로도 식재계획이 있었다 .『강릉지(康陵誌)』 「지당수개조(池塘修改條)」를 보면, “능 앞에는 반드시 못이 있으며, 막힌 곳은 개수(改修)를 하도록 한다... 못 가운데에는 조그만 섬이 있는데, 섬에는 몇 종의 꽃과 전나무가 있으며 연못의 주변에는 많은 수의 나무와 꽃들을 심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못 안에는 연꽃도 심어져 있었다. 또 『광릉지(光陵志)』에 따르면 “금천교를 지나 길을 따라 좌우에 진달래를 수백 그루 재식하고 재실 북쪽 창문에까지 수백 그루 피어 있으며, 또 마을 서쪽 어귀(西洞口) 4km의 길에는 많은 전나무와 잣나무가 있으며 마을 동쪽 어귀(東洞口) 2km 정도의 길을 따라서는 전나무와 잣나무, 더불어 진달래를 서로 맞대어 심었다“고 하여 재식은 왕릉의 영역 외부에서부터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대 왕들은 왕릉의 재식에 대하여 특별히 신경을 썼다. 1408년 3대 태종은 아버지 태조의 건원릉에서 제례를 지내고 능침 주변을 둘러본 뒤 잡풀을 제거하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두루 심어라 명하기도 하였다. 또 정조가 어느 여름날 아버지의 능인 융릉을 참배하러 갔다가 주변의 소나무에 송충이가 너무 많아 나무들이 병들어 가고 있음을 보고 슬퍼하며 송충이 한 마리를 잡아 이빨로 깨물어 죽였는데, 그 후에 이 일대의 송충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하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왕릉은 풍수지리에 근거한 자연경관에 입지하고 있어 특별한 관리나 계획이 필요치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능역의 산림은 이와 같이 인공적으로 조성되었다. 더불어 철저히 관리되기도 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능역에 수목이 줄어들었을 경우에는 봄, 가을로 보식 또는 식목을 하였으며, 정기적으로 잔디를 파종하고 제초작업을 하였다. 또 ‘화소(火巢)’ 와 ‘해자(垓字)’를 설치하고 관리하여 산림을 화재 피해 에서 막고자 하였으며 능참봉(陵參奉)을 상주시킴은 물론, 많은 수의 관리자를 두어 능침공간을 중심으로 능역을 관리하였다.

그리고 능역의 재식관리는 각 능마다 양묘장을 별도로 설치해 둠으로써 양질의 수목을 공급하도록 하였는데, 이 관리방법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이처럼 왕릉 일대는 자연환경을 잘 관리한 덕분에 다양한 종류의 수종이 보존되고 있어 좋은 경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생태계 보존상태 또한 매우 우수하다. 특히 도시화가 고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대 도시 지역에서 왕릉은 생태적 안정성과 종 다양성을 보장하는 주요한 생태계로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