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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년 종묘 사직의 역사 조선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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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19년은 정치, 문화, 사상 등 한반도에서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운 시대였습니다.
조선왕조가 떠받든 종묘 사직의 중심이자 조상의 얼과 역사가 녹아있는 조선왕릉.
600년이 지난 지금 조선왕릉은 도심속에서 현재 우리의 삶과 어우러져 조용히 역사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1392년부터 1910년까지 한반도에서 519년을 굳건히 지켜온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부터 제 27대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명의 임금이 계승한 나라였습니다. 조선왕조는 무엇보다 선조를 받드는 종묘와 백성의 풍요를 위한 사직을 중요시 했습니다.

특히 의례를 중요시한 왕조였기 때문에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왕의 장례는 엄격한 격식을 가지고 모든 정성을 다해 지냈습니다.

한반도에 전해지는 의례 중 가장 으뜸으로 치는 조선의 장묘 문화, 그 중 묘를 쓰는 것은 당대 법전에도 기록될 정도로 중히 여겨졌습니다.
519년 동안 조성 된 27대 국왕과 왕비의 무덤 조선왕릉, 총 42기로 북한의 2기를 제외하면 서울, 경기도, 강원도 일원 등 수도를 중심으로 40개가 몇 백년이 지난 지금 조성 당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자막)
조선왕릉은 단순히 왕과 왕비의 무덤이 아닙니다. 크고 작은 봉분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곳에는 당대 최고의 풍수지리학, 조경학, 건축학, 석조미술학은 물론 역사, 정치, 경제, 행적을 알 수 있고 작게는 제기, 복식, 의전 등 당대 조선시대를 대표했던 모든 문화양식이 담겨있습니다.

[당대의 뛰어난 사상, 유교와 풍수지를 담은 조선왕릉]
519년 역사의 조선왕조는 지배층에서 사회계층까지 무덤을 신앙처럼 숭배해 왔습니다. 그 중 최고 통치자인 왕들의 무덤은 최고로 존경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입지 역시 최고의 장소가 선택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시대 크게 유행 했던 풍수사상. 왕릉은 대개 남향으로 축조되어 배산임수. 즉, 뒤로는 높은 산을 주산으로 하고 산 아래로는 시냇물이 가로질러 땅의 기운이 흘러가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왕릉은 그야말로 명당의 상징이요 풍수의 비밀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또한, 유교의 중심사상인 효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한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에 조성했습니다.

[우주관을 담은 자연친화적인 조형기술]
당대 우주관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조선왕릉. 능의 구성은 능침, 제향, 진입 세 공간으로 나뉩니다. 금천교, 홍살문 등 산 자의 공간인 진입공간은 속세의 공간이며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의 공간인 제향공간으로는 정자각이 있습니다.
정자각의 들보를 중심으로 상위의 공간은 죽은 자를 위한 공간으로 산 자의 접근이 크게 제한되는 신성시하는 공간입니다. 왕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조성된 공간구성. 참배객들에게는 신성시하는 능침이 보이지 않도록 정자각으로 시선을 차단하는 반면, 능의 주인은 시각적으로 멀리 볼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했습니다. 조선왕릉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봉분을 이용한 자연친화적 조형기술입니다. 권위를 살리기 위해 주변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조성됐습니다.

조선왕릉에는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인물상과 동물상 등 왕릉의 주인을 지키기 위한 의식용 선물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능실을 보호하고 왕의 영원한 안식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장엄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냄과 동시에 자연속에 조화되어 예술적인 품격을 더하고 있는 문무석인. 문화예술이 발달했던 조선시대에 걸맞게 당대 최고의 기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대별로 나눠보면 석물들도 시대에 따라 당시에 통치사상과 정치적 영향을 받아 규모와 조각의 특성이 변화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매장기능을 했던 신라시대를 거쳐 일부 조형물이 들어서게 된 고려시대를 개선, 발전한 왕릉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하나의 예술로 완성되었습니다. 자연친화적이며 519년 동안 일관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또한 조선왕릉만의 큰 특징입니다.

[세계 유일의 제례와 기록 문화]
조상에 대한 숭앙심과 추모를 기리는 제례를 최고의 덕목으로 쳤던 유교국가 조선. 왕을 비롯 신하들은 매년 제향일에 역대 제왕과 왕후에 대한 제사를 올렸습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 된 조선왕조의 역대 임금과 공신들에게 드리는 종묘제례와 함께 강등에 대한 제례가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이는 타문화권에서는 볼 수 없는 조선왕릉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입니다.
조선왕릉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기록유산을 갖고 있습니다. 능의 조성과정과 사용된 의물들에 대한 내용이 담긴 『국조오례의』, 왕릉 조성과 관련한 택지, 택일, 규모, 동원 인원, 의례 절차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지금까지 생생히 남아있는 『산릉도감의궤』외 왕과 왕후의 업적 등을 기록한 『능지』도 다수 보존되어 기록유산으로의 완전성이 보여집니다.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져 내려온 왕릉 보존정책]
519년 간 과거 조선왕조의 찬란한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조선왕릉. 하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고 도심속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민족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현장학습, 야유회, 소풍 등 도심 속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역사교육장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조선왕릉이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국가기관의 철저한 관리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또한,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기업 그리고 자원봉사자 간의 상호유기적인 시스템이 가동되어 왕릉의 지속적인 관리 보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외국인들에게 왕릉의 역사와 우수성을 설명하는 왕릉지킴이 등 스스로 왕릉을 아끼고 지키는 자원활동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막)
자연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형술과 세계유일의 제례문화와 남겨진 기록물 등 역사적 의미가 뛰어난 조선왕릉, 6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모습 그대로 한국시민들에게 역사교육의 장이자 편안한 쉼터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계인이 깊은 역사 안에서 뛰놀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세계문화유산이 되길 기원합니다.

현재까지 살아 숨쉬는 519년 역사의 조선왕릉. 이제 긴 역사를 넘어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통해 조선왕릉이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가 보호하고 즐기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도록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