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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삼릉 이야기

제9대 성종 첫 번째 왕비 공혜왕후 순릉(順陵)

위치 :
경기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능의 형식 :
단릉
능의 조성 :
1474년(성종 5)
능의 구성

순릉은 조선 9대 성종의 첫 번째 왕비 공혜왕후 한씨의 단릉이다. 파주 삼릉 내에 있는 3기의 능 중에서 유일하게 왕릉의 형식으로 조성한 능인데, 공혜왕후는 중전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 수라간,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비각에는 한 기의 능표석이 있는데 ‘조선국 공혜왕후 순릉(朝鮮國 恭惠王后 順陵)’이라고 새겨져 있다.
능침은 병풍석은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고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2쌍씩 배치하였다. 장명등은 공릉의 장명등과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어 세부적인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조선 전기 장명등의 전반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점에서 비슷하다. 무석인은 머리에 투구를 쓰고 양손으로는 칼을 잡고 무관의 갑옷을 입고 목을 움츠린 모습이다. 갑옷의 선은 뚜렷하지만 얼굴은 다소 경색된 표정을 하고 있다.

능의 역사

1475년(성종 5)에 공혜왕후 한씨가 세상을 떠나자, 장순왕후의 공릉이 있는 파주에 능을 조성하였다.

공혜왕후(恭惠王后) 이야기

공혜왕후 한씨(재세 : 1456년 음력 10월 11일 ~ 1474년 음력 4월 15일)는 본관이 청주인 상당부원군 한명회와 황려부부인 민씨의 넷째 딸로 1456년(세조 2)에 연화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예종의 첫 번째 왕비 장순왕후와는 자매지간이 된다. 1467년(세조 13)에 자산군(성종)과 가례를 올려 천안군부인에 봉해졌으며, 1469년에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성종 사이에서는 소생을 낳지 못하였으며, 1474년(성종 5)에 창덕궁 구현전에서 19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죽고 사는 데는 천명이 있으니, 세 왕후를 모시고 끝내 효도를 다하지 못하여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는 것을 한탄할 뿐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순릉의 지석에는 공혜왕후에 대한 다음과 같은 평가가 전한다. 왕후는 나면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였으며, 조금 커서는 온화하고 의순하며 숙경하였다. 1467년 세조가 성종을 자산군으로 봉하고 배필을 가릴 때 뜻에 맞는 사람이 없었는데, 왕후가 덕 있는 용모를 지녔음을 알고 불러 보고서 혼인을 정하였다. 왕후를 들여와 뵈이니 언동이 예에 맞으므로 세조와 대왕대비가 매우 사랑하였다. 그 때 왕후는 나이가 어렸으나 노성한 사람처럼 엄전했으며, 늘 가까이 모시되 경근하기가 갈수록 지극하니 이 때문에 권우가 날로 더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