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영역

조선왕릉

원 이야기

제16대 인조 원자 소현세자 소경원(昭慶園)

위치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원의 형식 :
단분
원의 조성 :
1645년(인조 24), 1870년(고종 7)
원의 구성

소경원은 조선 16대 인조의 첫째 아들인 소현세자의 원이다. 서삼릉 경역에 있는 3기의 원 중에서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이 있고 향로와 어로는 묻혀있다. 정자각은 명확하게 터만 남아 있으며 예감과 산신석이 정자각터 뒤에 있다. 원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으며,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석호 1쌍, 석양 1쌍을 배치하였다.

원의 역사

1645년(인조 23)에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귀국 한 후 두 달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고양 효릉(孝陵) 근처인 지금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1870년(고종 7)에 원의 이름을 소경원(昭慶園)으로 격상하였다.

소현세자(昭顯世子) 이야기

소현세자(재세 : 1612년 음력 1월 4일 ~ 1645년 음력 4월 26일)는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의 첫째 아들로 1612년(광해 4)에 회현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후 1625년(인조 3)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627년(인조 7) 정묘호란 때 전주로 내려가 남도의 민심을 수습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듬해에 부인 강씨와 동생 봉림대군(효종) 및 대신들과 함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가게 되었다. 심양에 머무는 동안 단순한 볼모가 아닌 조선을 대표하는 외교적 재량권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소현세자는 서양 문물에 심취하여 천주교 신부인 아담 샬 등과 친교를 맺고 그를 통하여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 등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조를 비롯한 반청(反淸)파 대신들은 친정(親淸)적인 인물로 보여 왕세자로는 부적격자로 보이기도 하였다. 9년 후인 1645년(인조 23)에 볼모생활을 접고 귀국하였으나 반청친명정책으로 인해 박대를 받았다. 귀국 한지 2달 후에 갑자기 병으로 눕게 되어 4일 만에 급사하였다. 『인조실록』에는 시신의 아홉 구멍(九血)에서 출혈되고 있고, 시신의 낯빛이 진흑으로 변해있었다고 하여 독살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