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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영회원 이야기

소현세자빈 민회빈 강씨 영회원(永懷園)

위치 :
경기 광명시 노온사동 산 141-20
원의 형식 :
단분
원의 조성 :
1646년(인조 24), 1719년(숙종 44), 1870년(고종 7)
원의 구성

영회원은 조선 16대 인조의 첫째 아들 소현세자의 부인 민회빈 강씨의 원이다. 폐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친정집안에 묘를 조성하였다가, 1718년(숙종 44)에 복위되어 묘를 새롭게 조성하였다. 원침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석호 1쌍, 석양 1쌍을 배치하였으며, 홍살문, 정자각, 곡장 등은 소실되었다.

원의 역사

1646년(인조 24)에 소현세자빈 강씨가 폐위되어 사사된 후 친정인 금천 강씨 묘역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1719년(숙종 44)에 복위되어 시호를 민회빈(愍懷嬪), 묘호를 민회묘(愍懷墓)라 하고 세자빈묘의 형식에 맞게 묘를 새롭게 조성하였다. 1870년(고종 7)에 원의 이름을 영회원(永懷園)으로 격상하였다.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 이야기

민회빈 강씨(재세 : 1611년 ~ 1646년 음력 3월 15일)는 본관이 금천인 우의정 강석기와 고령신씨의 딸로 1611년(광해 3)에 태어났다. 1627년(인조 5)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으로 남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의 볼모로 가게 되었다. 청나라 심양에서 소현세자를 도와 서양 문물을 습득하고, 무역과 농장 경영을 하여 볼모자가 아닌 여성 경영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645년(인조 23)에 소현세자와 함게 귀국하였지만, 두 달 후에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 맞는 비운을 겪었다. 이후 인조의 후궁 조씨 등이 강씨가 인조를 저주하고 수라의 독을 넣었다고 모함하면서, 1646년(인조 24)에 폐위되어 사사되었다. 사사 후 소현세자의 아들 3명이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첫째 아들 경선군과 둘째 아들 경완군은 유배지에서 죽었으며, 셋째 아들 경안군만 겨우 살아남게 되었다. 이 후 효종대에부터 무고함을 주장하여 신원을 요청하였으나 모두 무산되었다가, 1719년(숙종 44)에 무혐의가 인정되어 민회빈(愍懷嬪)으로 복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