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영역

조선왕릉

서오릉 이야기

추존 장조 사친 영빈 이씨 수경원(綏慶園)

위치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원의 형식 :
단분
원의 조성 :
1764년(영조 40), 1899년(광무 3), 1970년
원의 구성

수경원은 조선 21대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 장조의 사친인 영빈 이씨의 원이다. 수경원은 처음 묘제의 형식에 맞게 조성하였다가, 1899년(광무 3)에 수경원으로 높여지자, 원의 형식에 맞게 홍살문, 정자각, 비각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이후 수경원은 1970년에 서오릉으로 이장되었다.
입구에는 대한제국때 세운 원표석이 있고, 원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봉분만 조성하였다. 그 밖에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원의 역사

1764년(영조 40)에 영빈 이씨가 세상을 떠나자 양주 연희궁 대야동(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에 의열묘(義烈墓)라는 이름으로 묘를 조성하였다. 1788년(정조 12)에 선희묘(宣禧墓)로 고쳤고, 1899년에 사도세자가 장조의황제로 추존되자 영빈 이씨는 황제의 사친으로 추존되어 원호를 수경원이라 하였다. 이후 1970년에 서오릉 경내로 이장되었다.

영빈 이씨(暎嬪 李氏) 이야기

영빈 이씨(재세 : 1696년 음력 7월 18일 ~ 1764년 음력 7월 26일)는 본관이 전의인 증 찬성 이유번과 한양김씨의 딸로 1696년(숙종 22)에 태어났다. 1701년(숙종 27)에 입궁하여 궁녀생활을 하다가 1726년(영조 2) 영조의 후궁이 되어 1730년(영조 6) 영빈으로 책봉되었다. 영빈 이씨는 영조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은 후궁으로 영조 사이에서 1남(사도세자) 6녀를 낳았다. 사도세자의 생모였으나 아들에 대한 일을 일절 간섭하지 않았으며, 혜경궁 홍씨가 저술한 『한중록』에 의하면 영조가 사도세자의 처분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영빈 이씨가 영조에게 ‘대처분’을 청하였다고 할 정도로 냉정하고 강철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후 1764년(영조 40)에 경희궁 양덕당에서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1899년(광무 3)에 사도세자가 장조의황제로 추존되면서 영빈 이씨는 황제의 사친 지위로 추존되어 시호를 소유(昭裕)라 하였다.
현재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 입구에서 연세대학교로 넘어가는 곳에는 나지막한 고개가 있다. 사람들은 그 고개를 벌고개 또는 버리고개라 불렀다. 고개를 넘은 곳에 영빈 이씨의 수경원이 위치해 있었는데, 수경원 조성 이후 주룡(主龍)에 해당하는 산 능선을 사람들이 넘어다니게 되면 등성이가 낮아질 뿐만 아니라 불경스러운 일이 된다 하여 통행을 금지시켰고, 만일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벌을 내렸으므로 '벌(罰)고개'라 하였으며, 이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버리고개'로 불렸다는 설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