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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서오릉 이야기

제21대 영조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 홍릉(弘陵)

위치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능의 형식 :
단릉
능의 조성 :
1757년(영조 33)
능의 구성

홍릉은 조선 21대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이다. 정성왕후 한 분만 모신 단릉의 형식이나, 석물의 배치는 쌍릉의 형식으로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비각 안에 있는 표석도 쌍릉의 형식을 생각하여 글을 새겼다. 능침은 숙종의 명릉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다. 그 밖에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등을 배치하였다. 홍릉의 무석인은 투구와 등에 장식이 많이 되어 있다. 뒷면에는 문양이 촘촘히 넣어져 있는 목 가리개를 위로 올렸다. 갑옷의 등 부분에는 물고기 비늘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가슴 부분은 구름 형태의 판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의 역사

1757년(영조 33)에 정성왕후 서씨가 세상을 떠나자 예종의 창릉 동쪽 언덕인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을 조성하면서 숙종의 명릉(明陵)제도를 참작하여 쌍릉 형식으로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능 자리를 미리 잡아 능의 오른쪽 자리를 비워두는 허우제(虛右制)로 홍릉을 조성하였다. 석물 배치 역시 쌍릉의 형식으로 배치하고 비워있는 자리에 십자十字 모형을 새겨 정혈에 묻어 표기하게 하였다. 그러나 1776년에 영조가 세상을 떠나고 정조가 즉위하면서, 영조의 능 자리에 대한 대신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효종의 구 영릉(寧陵) 자리로 최종 결정되어 원릉이라는 이름으로 영조의 능을 조성하였다. 이로 인해 홍릉의 오른쪽 자리는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정성왕후(貞聖王后) 이야기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 서씨(재세 : 1692년 음력 12월 7일 ~ 1757년 음력 2월 15일)는 본관이 대구인 달성부원군 서종제와 잠성부부인 이씨의 딸로 1692년(숙종 18)에 가회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1704년(숙종 30)에 숙종의 왕자 연잉군과 가례를 올려 달성군부인에 봉해졌고, 1721년(경종 1)에 왕세제빈으로 책봉된 후 1724년에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정성왕후는 조선 역대 왕비 중에서 중전 재임을 가장 오래 하였으나 영조 사이에서 소생을 낳지 못하였다. 두 후궁에서 낳은 효장세자와 사도세자가 왕세자로 책봉될 때 양자로 입적하기도 하였으며, 영조와 사도세자가 대립하게 되자 그 중심에 서서 갈등을 풀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후 1757년(영조 33)에 창덕궁 관리합에서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영조는 친히 왕후의 행장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왕궁 생활 43년 동안 항상 웃는 얼굴로 맞아주고, 양전을 극진히 모시고, 게으른 빛이 없었으며, 숙빈 최씨(영조의 생모)의 신주를 모신 육상궁 제전에 기울였던 정성을 고맙게 여겨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