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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영휘원·숭인원 이야기

의민황태자의 사친 순헌황귀비 엄씨 영휘원(永徽園)

위치 :
서울 동대문구 홍릉길 90
원의 형식 :
단분
원의 조성 :
1911년
원의 구성

영휘원은 대한제국 1대 고종태황제의 후궁이자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사친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원소이다. 원소의 구성은 조선시대의 원소제도의 형태를 따랐다.
영휘원 입구에는 재실이 있고, 홍살문, 향로와 어로, 정자각, 비각 등이 배치되어 있다. 비각안에는 원표석 1기가 있는데 ‘순헌귀비 영휘원’이라고 새겨져 있다. 비각 뒤에는 어정이 남아 있다. 원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호석만을 둘렀으며,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을 배치하였다. 원의 형식으로 석양과 석호는 각 1쌍씩 배치하였고 무석인은 생략하였다.

원의 역사

1911년에 황귀비 엄씨가 세상을 떠나자, 명성황후의 홍릉(구 홍릉) 경내인 현재의 자리에 원소를 조성하였다.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 이야기

순헌황귀비 엄씨(재세 : 1854년 ~ 1911년 양력 7월 20일)는 본관이 영월인 증 찬성 엄진삼의 딸로 1854년(철종 5)에 태어났다. 5살의 나이에 궁녀로 입궁하여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아 시위상궁이 되었다. 그러나 1885년(고종 22) 32세때 고종의 승은을 입게 되자 명성황후의 진노를 사 강체출궁을 당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 된 후 고종의 명으로 다시 입궁하여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 조선의 국모를 살해할 정도로 거칠어진 일본의 압박에 고종은 매우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때 상궁이었던 황귀비는 며칠 동안 가마 2채로 궁을 출입하며 일본의 감시를 느슨하게 한 뒤 고종과 왕세자 순종을 가마에 태워 러시아공관으로 탈출시킨다. 치밀하고 대담하게 진행된 이 ‘아관파천’을 통해 황귀비의 성격과 지혜를 다소 짐작해 볼 수 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 된 후에 황태자(영친왕)를 낳았으며, 이후 귀인(貴人), 순빈, 순비를 거쳐 1903년(광무 7)에 황귀비로 책봉되었다. 엄씨는 우리나라의 교육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특히 여성의 신교육을 위해 진명여학교와 명신(숙명)여학교를 설립하였고, 양정의숙(양정중고교)이 재정난에 허덕이자 땅 200만 평과 내탕금을 기증하는 등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를 키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경술국치 후 1911년에 덕수궁 즉조당에서 58세로 세상을 떠나 시호를 순헌(純獻) 궁호를 덕안궁(德安宮), 원호를 영휘원(永徽園)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