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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원·묘 이야기

대한제국 의민황태자 · 의민황태자비 영원(英園)

위치 :
경기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원의 형식 :
합장
원의 조성 :
1970년, 1989년
원의 구성

영원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 이씨(이방자)의 원소이다. 원소는 조선왕릉의 형식으로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재실, 홍살문, 판위, 정자각, 비각 등이 배치되어 있고, 수복방과 수라간은 설치하지 않았다. 비각 안에 있는 표석에는 ‘대한 의민황태자 영원 의민황태자비 부좌’라고 써있다. 원침에는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는 조선왕릉의 형식과 같은 개수로 배치하였다. 석물들의 조각은 홍릉과 유릉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형식을 띠고 있다.

원의 역사

1970년에 의민황태자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에 홍릉 동쪽에 영원을 조성하였다. 그 후 1989년에 의민황태자비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89세로 세상을 떠나자 영원에 합장으로 원을 조성하였다.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 이야기

의민황태자(재세 : 1897년 양력 10월 20일 ~ 1970년 양력 5월 1일)는 고종과 순헌황귀비 엄씨의 아들로 1897년(광무 1)에 덕수궁(경운궁) 숙옹재에서 태어났다. 1900년에 황제의 아들로써 영친왕에 책봉되었고, 1907년(융희 1)에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일본유학이 결정되어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고, 일본 왕족인 마사코(방자)와 결혼하였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으로 이왕세자(李王世子)로 강등되었고, 1926년에 순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명목상으로 이왕(李王)의 지위를 받았다. 일본 육군사관학교의 교수부장, 육군 중장이 되었다가 1945년에 해방을 맞이하여 귀국하려 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이 후 평민으로 강등되어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1963년에 대한민국의 국적을 얻어 귀국하였다. 그러나 이미 병환이 악화되어 혼수상태로 귀국하였기 때문에 병상생활을 하다가, 1970년에 창덕궁 낙선재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신주는 종묘 영녕전 16실에 모셨다.

의민황태자비(懿愍皇太子妃) 이야기

의민황태자비 이씨(재세 : 1901년 양력 11월 4일 ~ 1989년 양력 4월 30일)는 일본 왕족인 수정친왕의 딸로 동경부 동경시 이본궁저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일본 황태자비로 정해졌었으나, 대한제국과의 정략결혼이 결정되면서 1920년에 황태자와 결혼하였다. 의민황태자 사이에 2남(이진, 이구)을 낳았으며, 1945년에 해방을 맞이하여 귀국하려 하였으나 무산되었다. 광복 후 일본 왕족에서도 제외되어 재산이 몰수되는 일을 겪었다가 1963년에 대한민국의 국적을 얻어 귀국하였다. 귀국 후 사회봉사사업에 힘을 써 신체장애자 재활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사회복지법인 명휘원을 설립하였으며 의민황태자가 세상을 떠난 후 영친왕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지나온 세월』, 『세월이여 왕조여』 등이 있으며, 1989년 양력 4월 30일에 창덕궁 낙선재에서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신주는 종묘 영녕전 16실에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