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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묘 이야기

제15대 광해군 사친 공빈 김씨 성묘(成墓)

위치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 55
묘의 형식 :
단분
묘의 조성 :
1577년(선조 10), 1610년(광해 2)
묘의 구성

성묘는 조선 14대 선조의 후궁이자 15대 광해군의 사친인 공빈 김씨의 묘소이다. 묘소는 왕릉제도로 조성되었는데, 이는 공빈 김씨가 1610년(광해 2)에 공성왕후(恭聖王后)로 추존되면서 성릉(成陵)으로 추봉되었기 때문이다.
성릉으로 추봉된 이후에 왕릉의 능제에 맞게 다시 조성하여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과 호석을 둘렀으며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를 배치하였다.

묘의 역사

1577년(선조 10)에 공빈 김씨가 세상을 떠나자 풍양 조씨 시조묘소 뒤인 현재의 자리에 묘소를 조성하였다. 이후 1610년(광해 2)에 공빈 김씨가 공성왕후로 추존되자 묘를 능으로 추봉하고 석물을 다시 조성하였다. 그러나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공성왕후는 공빈으로 다시 강등되어 현재의 성묘(成墓)가 되었다.

공빈 김씨(恭嬪 金氏) 이야기

공빈 김씨(재세 : 1553년 음력 10월 11일 ~ 1577년 음력 5월 27일)는 본관이 김해인 해령부원군 김희철의 딸로 1553년(명종 8)에 태어났다. 선조 즉위 후 선조의 후궁이 되어 1572년(선조 5)에 임해군을, 1575년(선조 8)에 광해군을 낳았다. 그러나 1577년(선조 10) 25세로 세상을 떠났다. 광해군은 즉위 후 생모 공빈 김씨를 왕후로 추존하는 일에 힘을 썼다. 하지만 광해군은 선조의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의 양자입적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대신들은 공빈 추존을 반대하였다. 광해군은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610년(광해 2)에 공빈을 공성왕후(恭聖王后)로 추존하고 휘호를 자숙 단인(慈淑 端仁), 능호를 성릉(成陵)으로 추봉하였다. 그 후 1615년(광해 7)에 명나라의 왕후추존고명을 받았고, 신주를 종묘 선조실에 부묘하였다. 이로써 광해군은 후궁 소생이 아닌 왕후 소생이 되었으나,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공성왕후의 모든 호칭을 폐하여 공빈으로 다시 강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