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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홍릉·유릉 학술이야기

왕릉과 황제릉의 차이

조선 왕릉의 변천사

조선 왕릉 석물의 배치와 구조는 기본적으로 큰 변화 없이 오랜 기간 반복되었지만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나 당대 왕의 의지에 따라 약간씩의 변화가 있어 왔다. 제1기는 태조의 건원릉(1408)에서부터 문종 현릉(1452)으로 조선 왕릉의 기본형식을 갖춘 시기이다. 제2기는 세조의 광릉(1468)에서부터 숙종 익릉(1681)까지로 석물의 전반적인 배치나 표현상에서 조선 왕릉 특유의 조각 양식이 확립된 시기이다. 제3기는 인조의 장릉(1731)에서부터 철종의 예릉(1864)까지이며 병풍석이나 장명등의 형태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고 조각의 비례가 바뀐다. 제4기는 황제릉이 조성된 시기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라 칭하면서 고종의 홍릉과 순종의 유릉이 황제릉의 형식을 취하였다. 이에 더하여 유릉의 석물에서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왕릉과 황제릉의 차이

홍릉과 유릉은 조선의 국명을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황제라 칭한 고종과 순종의 능이다. 황제릉으로 조선 왕릉과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는 향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어로가 설치되어 향·어로가 3개의 단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둘째는 조선 왕릉의 정자각에서 월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정자각의 좌우에 설치되어 있는 것과 달리 정자각을 대신하는 침전(寢殿)의 정면에도 설치되어 있어 홍살문과 직선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능침구역의 봉분 앞에 위치하던 석물이 향·어로에서 침전 사이로 배치되어 있으며 이것은 중국 황제릉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넷째는 비각의 위치인데, 홍릉 역시 비각이 침전과 수평을 이루고 있다.

정자각이 침전으로

홍릉과 유릉에서는 정자각이 ‘정(丁)’자의 평면 형태에서 ‘일(一)’자형으로 변화되었고, 그 이름 또한 ‘침전’으로 변경되었다. 침전이라는 용어는 궁궐건축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임금의 숙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지붕형식 또한 맞배지붕에서 팔작지붕으로 변경되었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건축되었다. 월대의 바닥의 마감이 박석으로 되어있어 이전의 전돌 바닥과 다르며, 계단의 위치 및 개수가 이전의 정자각과 다르게 침전의 좌우로 각각 2개, 전면으로 3개가 배치되었다. 또한 전면의 계단이 생김으로 해서 침전에서 홍살문까지 향·어로가 직선으로 설치되었다.

양과 호랑이 대신 들어선 기린과 코끼리

홍릉과 유릉의 향·어로 양 옆으로 석물들이 줄지어 서있다. 코끼리,해태 등 다른 조선 왕릉에서 보지 못한 생소한 동물들이다.

황제릉인 홍릉과 유릉의 또 하나의 큰 특징은 석물이 제향공간으로 내려온 점이다. 능원의 기본 석물인 문무석인과 동물상이 침전 앞 향·어로로 내려오면서 석호와 석양이 사라졌고 대신에 중국 명나라 황제릉에 보이는 다양한 동물상이 등장한다. 우선 문석인과 무석인이 차례로 마주보고 서고, 그 뒤로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이 순서대로 향·어로의 양쪽으로 정렬하고 있다. 특히 유릉의 경우는 서양식 조각수법이 더욱 많이 반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