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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묘 이야기

왕자 · 왕녀 묘역

왕자·왕녀 묘역

왕자·왕녀 묘역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왕과 황제의 왕자묘 8기와 왕녀묘 14기 등 총 22기의 묘를 일제강점기에 옮겨온 곳이다. 각 묘에는 옮겨진 후 새로 세운 묘비석과 원래 묘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묘비석 뒷면에는 언제 옮겨졌는지에 대한 내용이 있다. 특히 일본의 연호를 삭제한 흔적이 남아 있다. 묘역은 모두 하나의 담장 안에 있으며, 묘역 앞에는 문석인과 상석, 장명등이 배치되어 있다.

왕자와 왕녀 묘
  정소공주 묘 인성대군 묘 인순공주 묘
묘주 정소공주(貞昭公主)
(재세 : 1412년 ~ 1424년)
인성대군(仁城大君)
(재세 : 1461년 ~ 1463년)
인순공주(仁順公主)
(재세 : 1542년 ~ 1545년)
부모 세종, 소헌왕후 장녀 예종, 장순왕후 장남 중종, 문정왕후 4녀
초장지 고양 벽제 고양 신도 (현 서오릉 경내) 양주 진접 (현 남양주 진접)
표석 정소공주지묘(貞昭公主之墓) 인성대군지묘(仁城大君之墓) 인순공주지묘(仁順公主之墓)
  왕녀 묘 숙신공주 묘 명선공주 묘
묘주 왕녀(王女)
(재세 : 1586년 ~ 1591년)
숙신공주(淑愼公主)
(재세 : 1635년 ~ 1637년)
명선공주(明善公主)
(재세 : 1659년 ~ 1673년)
부모 선조 효종, 인선왕후 장녀 현종, 명성왕후 장녀
초장지 양주 진접 (현 남양주 진접) 고양 신도 광주 중부 (현 성남 수정)
표석 왕녀지묘(王女之墓) 숙신공주지묘(淑愼公主之墓) 명선공주지묘(明善公主之墓)
  명혜공주 묘 화억옹주 묘 왕녀 묘
묘주 명혜공주(明惠公主)
(재세 : 1665년 ~ 1673년)
화억옹주(和億翁主)
(재세 : 미상)
왕녀(王女)
(재세 : 미상)
부모 현종, 명성왕후 차녀 영조, 정빈 이씨 장녀 영조, 영빈 이씨
초장지 광주 중부 (현 성남 수정) 고양 신도 고양 신도
표석 명혜공주지묘(明惠公主之墓) 어필 증화억옹주지묘(御筆 贈和億翁主之墓) 왕녀지묘(王女之墓)
  왕녀 묘 영온옹주 묘 대군 묘
묘주 왕녀(王女)
(재세 : 미상)
영온옹주(永溫翁主)
(재세 : 1817년 ~ 1829년)
대군(大君)
(재세 : 1820년 ~ 1820년)
부모 영조, 영빈 이씨 순조, 숙의 박씨 1녀 순조, 순원숙황후 차남
초장지 고양 신도 경성 청엽정 (현 효창공원) 경성 신촌정 (현 신촌)
표석 왕녀지묘(王女之墓) 영온옹주지묘(永溫翁主之墓) 대군지묘(大君之墓)
  왕녀 묘 원자 묘 원자 묘
묘주 왕녀(王女)
(재세 : 미상)
원자(元子)
(재세 : 1858년 ~ 1859년)
원자(元子), 태실병장
(재세 : 1871년 ~ 1871년)
부모 헌종, 숙의 김씨 1녀 철종, 철인장황후 장남 고종, 명성태황후 장남
초장지 경성 청엽정 (현 서울 청파) 서울 연희 서울 북아현
표석 왕녀지묘(王女之墓) 원자지묘(元子之墓) 원자지묘(元子之墓)
  왕녀 묘 대군 묘 공주 묘
묘주 왕녀(王女)
(재세 : 미상)
대군(大君), 태실병장
(재세 : 1878년 ~ 1878년)
공주(公主), 태실병장
(재세 : 1871년 ~ 1871년)
부모 고종, 내안당 귀인 이씨 1녀 고종, 명성태황후 4남 고종, 명성태황후 1녀
초장지 서울 연희 고양 신도 서울 숭인
표석 왕녀지묘(王女之墓) 대군지묘(大君之墓) 공주지묘(公主之墓)
  왕녀 묘 대군 묘 왕자 묘
묘주 왕녀(王女)
(재세 : 미상)
대군(大君)
(재세 : 1875년 ~ 1875년)
왕자
(재세 : 1916년 ~ 1916년)
부모 고종, 영보당 귀인 이씨 1녀 고종, 명성태황후 3남 고종, 내안당 귀인 이씨 1남
초장지 서울 금정 서울 숭인 서울 청량리
표석 왕녀지묘(王女之墓) 대군지묘(大君之墓) 왕자지묘(王子之墓)
  왕자 묘    
묘주 왕자
(재세 : 1914년 ~ 1915년)
   
부모 고종, 보현당 귀인 정씨 1남    
초장지 서울 성동 뚝섬    
표석 왕자지묘(王子之墓) * ‘태실병장’은 묘에 태실도 같이 묻혀 있다는 뜻

고종 왕자 완화군(완친왕)묘

고종 왕자 완화군(완친왕)묘

묘의 형식과 구성

완화군(완친왕)묘는 후궁 묘역 안에 위치해 있다. 완화군묘는 처음 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조성하였으나 광복 후 도시화 개발로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묘에는 상석과 향로석, 묘표석만 있다. 묘표석에는 ‘有明朝鮮國 王子領宗正卿府事完和君 贈諡孝憲公墓(유명조선국 왕자영종정경부사완화군 증시효헌공묘)’라고 새겨져 있다.

완화군(완친왕) 이야기

완화군(재세 : 1868년 음력 윤4월 10일 ~ 1880년 음력 1월 12일)은 고종과 영보당 귀인 이씨의 아들로 1868년(고종 5)에 태어났다. 고종에게는 첫째 아들이 된다. 1876년(고종 13)에 완화군에 봉해졌으나, 1880년(고종 17)년에 13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대한제국 선포 후 1907년(융희 1)에 완친왕(完親王)에 추봉되었다.